토론:5·18 광주 민주화 운동/보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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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민주화운동이라고 보기엔 애매합니다.

참 어떤면에서는 너무 사실과는 다릅니다. 영화(화려한 휴가)나 책(교과서를 비롯한 많은 서적)에서는 군인들이 총을 쏘았고 때문에 무기고를 탈취했다고 하지만,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자 군인들이 들어와 통제를 시작했고, 약간 지나치다 시피 통제를 하자, 성난 시민들이 경찰서 무기고를 탈취하여 시가전 형태로 변한것이지 군인이 먼저 발포 했다는것은 왜곡된 것입니다. 그동안 좌익정권 인사들 "김대중", "노무현" 운동권 출신이신 대통령님들께서 정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좌익의 시각에서 보여진 그리고 약간은 왜곡된 그런 발언들, 자료들이 나왔기 때문에 지금은 잘못 해석되어 알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Dlawndud2002(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이미 전두환이후 노태우정권때 재수사가 진행되어서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은 겁니다. 그리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운동권 경력이 있더라도 좌익이 아니죠. 진짜 좌익들이 웃습니다. 그리고 운동권 출신이야 뉴라이트에 가득하지 않나요?[[사용자:StormDaebak|%Les Templiers%</font미디어:Example.ogg> et %Templiers Noirs]] Discussion Histoire 2009년 4월 28일 (화) 10:38 (KST)[답변]
그분들이야 이미 사상전향을 하셨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님들이 좌익이 아니면 우익인가요? 이점은 좀 확실히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을 받았다는것이 과연 정말 민주화 운동이었기 때문에 인정받은것인지 노태우 대통령께서 국민을 두려워 하여 민주화로 판결내린것인지 확실하게 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아버지께서 진압군 전차 전차장으로 계셨기 때문에 그때의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일종의 증언이죠. 물론 학살이 잘했다는 것, 정당화 될순 없지만 민주화 운동인지 아닌지는 짚고 넘어 가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두둔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역사를 바로 잡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뉴라이트를 싫어 하시는건 알겠지만 뜬금없이 뉴라이트 운동권인사 발언이 왜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뉴라이트 거론을 한적도 없거든요.Mr.Julian Lim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07:48 (KST)[답변]
“젊은 여자, 예쁘장한 여자일수록 가해지는 (계엄군의)폭력은 심했다. - 동아일보 사회부 김충근 기자 - --쥐박멸전담반 (토론) 2010년 4월 22일 (목) 10:05 (KST)[답변]
김대중 노무현은 사실 우익입니다. 김대중은 말할 필요도 없고, 노무현은 약간 중도 수렴을 한 것에 불구하죠. %Les Templiers% et %Templiers Noirs Discussion Histoire 2009년 4월 29일 (수) 09:18 (KST)[답변]
우익에선 우익이라고 보지않고 좌익이라고 봅니다. Mr.Julian Lim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9:25 (KST)[답변]
정보 현재 위키백과에서 민주당 계열은 '중도 보수주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어판에서도 중도 정당으로 되어 있고요. adidas (토론) 2009년 4월 29일 (수) 19:31 (KST)[답변]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점은 일단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공식으로 인정하는 표현입니다. 최소한 극소수 뉴라이트 단체보다는 '상대적으로 올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 4,3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민간인이 먼저 공격을 했냐, 군인이 먼저 공격을 했냐는 문제는 부차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민간인이 선제공격을 했다고 치더라도, 전두환에 의한 엄청난 학살이 용서되는 것은 아닙니다. adidas (토론) 2009년 4월 28일 (화) 11:09 (KST)[답변]
민주화 운동이 공식적인 것이죠. 뉴라이트 쪽에서는 '광주 사태'라고 폄하해서 부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명 민주화를 요구했던 것은 사실이니 그 점을 간과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전두환 쪽이 민주화를 주창하던 쪽도 아니잖아요. -- 윤성현 기여F.A 2009년 4월 29일 (수) 09:12 (KST)[답변]
위에 처음에 글쓴 Dlawndud2002님, 참 할말 없군요. 우선 노태우 정부 때는 여전히 5.18 사태였으며, 김대중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해왔던 김영삼이 (비록 노태우와 결탁하여 정권을 잡았지만) 5.18 사태에 대해 "현 정부는 5.18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부"라고 언급하고 이후 5.18 특별법 등을 제정하여 "5.18 광주사태"를 "5.18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정식 변경한겁니다. 그럼 이 때 집권당이었던 민자당(현 한나라당)도 좌익일까요? 김영삼 정부가 좌익정부입니까?
게다가, 엄연히 계엄해제와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화 인사를 석방하라고 주장하던 시민들을 막는답시고 무자비하게 강제 진압하면서 일이 커진건데 어떻게 이게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고 할 수 있나요? Dlawndud2002님의 아버지를 비롯한 진압군 입장에서야 당연히 시위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겠죠. 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무장도 하지 않았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면서 시작된겁니다. 설령 Dlawndud2002님의 아버지가 처음 목격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이미 무장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이미 그 이전에 발포 내지는 진압이 있었을 가능성은 생각 안하시나요? 더군다나 당시에는 언론 통제로 인해 광주의 상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걸로 더 이상 얘기할 것도 없지 않나요? 하긴 뉴라이트에 가입된 사람들은 그저 독재정치에 반대하면 무조건 좌익세력이라고 하니까 말 다한거죠.
위에 분들 서명이 안 되어 있군요.. --Egaweg (토론) 2010년 8월 18일 (수) 12:07 (KST)[답변]
김영삼 정부가 좌익정부냐구요? 김영삼은 1970년대 이후로 계속 야당에 몸담으면서 김대중과 더불어 신군부에 가장 강력히 저항했던 인물 중 한명입니다. 괜히 양김이 아니에요. 대통령을 신한국당 대표로 나와서 했다고 본인의 사상이 어디 가나요? 그리고 5.18 특별법을 제정한 이유는 뭔지 아시나요? 바로 전두환을 심판할 마땅한 법률 조항을 찾지 못해서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하기 위해 새롭게 법을 제정한 겁니다. 즉, 특별법 자체가 전두환 심판에 목적을 두고 만들어진 법이란 얘기에요. 특별법의 일부를 위헌이냐 아니냐를 놓고 대법원 판결까지 갔었고 위헌 판결을 놓고 정치적인 공작이 있었다는 논란이 있지만 여기서 그건 논외로 하지요. 또한 5.18 특별법이 5.18 광주사태에 진압에 대해 전두환을 처벌하기 위한 것으로 아시나요? 5.18 특별법은 12.12 사태 및 5.17 쿠데타로 인한 군 하극상 및 정권장악에 대한 처벌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덧붙이자면, 시민쪽 입장에서 보면 "강경하게 진압하여 어쩔수 없이 무기를 들고 싸웠다"가 되고 군인쪽 입장에선 "시위 해산을 하지 않고 폭력적으로 저항하여 강경 진압했다"가 됩니다. 강경하게 진압한건 군인쪽 잘못이었으나 시민들이 이에 맞서 총을 들고 나왔죠. 전 민주화 운동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후에 무기고 습격, 도청 TNT 폭파 위협, 군인을 향해 총을 겨눴다는 점에서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쌍방 과실로 인한 비극적인 사태로 인식하는게 더 공정하다고 생각 합니다. --Floriotto (토론) 2013년 1월 10일 (목) 00:20 (EST)


참고로 김대중, 노무현은 이전 정권에 비해서 대북정책만 빼놓고는 경제를 비롯한 전반적인 정책은 우파쪽에 가깝습니다. 북한에 유화적인 정책을 폈다고 무조건 좌익이라는건 도대체 어느 나라 발상인가요? 게다가 김대중의 경우에는 98년 미국 방문 당시, 미국 정치인 중에서도 강경 보수세력에 속하는 뉴트 깅그리치 하원 의장(공화당 소속)으로부터 극찬을 받았을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미국의 강경 보수 정치인 시각에서 봤을 때 사상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도 좌익이라고 우겨댈겁니까? 하긴, 뉴라이트에 가입된 사람들은 다른 정책이 정상이라도 대북 정책이 조금만 유화적이면 무조건 좌익세력이라고 하니까 말 다한거죠. -- youn8691 2009년 5월 2일 (토) 19:04 (KST)[답변]
youn8691님 의견이 좋은 답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극우 인사들의 근거가 부족한('일부 우익 단체의 주장' 부분 참조)이 아닌 한 민주화 운동이라는 데 이견을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좌익/우익 기준도 그렇고, 민주화 운동이냐 아니냐에 대해서도, 답글을 다신 분들은 보편적이거나 역사적인 근거를 구체적으로 대면서 다 설명해 주셨는데 정작 글타래를 시작한 Dlawndud2002님은 근거가 없는 단순 견해(speculation)와 소위 '아버지의 증언'만을 써 놓으셨습니다. 허탈합니다. Geropod (토론) 2009년 6월 1일 (월) 10:17 (KST)[답변]
이미 현재 이름이 '공식 명칭'으로 굳어진지 꽤 되었습니다. 극소수의 극우 인사들이 여전히 '광주 폭동'이니 뭐니 부르는데, 자기들끼리나 그렇게 떠들라고 하고 여기에 굳이 적용시킬 이유는 없겠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6월 1일 (월) 10:51 (KST)[답변]
Dlawndud2002 이 인간 진짜 아주 막말을 하는구만.... 뭐? 군인들이 지나치다시피 통제하니까 시민들이 무기고를 탈취해서 시가전으로 진행돼? 그럼 군인들이 총도 안 쏘고 구타하지도 않고 그냥 통제만 했을뿐인데 시민들이 갑자기 열받아서 무기를 탈취했다는건가? 그게 논리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웃기고 앉았네.... 당신 뉴라이트 가입자라며? 지금 여기서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말하기는 뭐하니까 대충 말을 돌려서 하는거 누가 모를줄 알어? 뉴라이트 가입된 인간들은 다 그따위 왜곡된 생각하고 있잖아?
이곳은 위키백과의 토론장입니다. 님의 뜻은 잘 알겠으나, 감정적인 표현은 삼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한 뚝배기 하실레예?(U, T) 2011년 8월 26일 (금) 21:21 (KST)[답변]
뉴라이트 가입자 대부분이 주체사상파 출신입니다. 저 사람도 주체사상파 출신이겠죠. --이결 (토론) 2011년 5월 6일 (금) 17:03 (KST)[답변]
그리고 진압군이었던 아버지 얘기를 들었는데, 학살을 정당화할 순 없지만, 아버지를 두둔하려는건 아니지만 민주화 운동인지 아닌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대체 뭘 말하고 싶은건데? 그래서, 군인들은 가만히 있는데 광주 시민들이 괜히 무기고를 탈취해서 무장해서 일으킨 폭동이고, 그 배후에는 북한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거 아냐? 당신, 그따위로 비겁하게 인터넷에서 숨어서 그럴게 아니라, 광주 5.18 묘역에 가서 어디 그딴소리 해봐. 어떻게 되나 두고보자.
굳이 당신 의견이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라는건 위에 YOUN8691님이 설명했으니까 한 번 곰씹어봐. 아 진짜 재수없는 글을 다보겠네... 하여간 뉴라이트 가입자들은 이래서 안된다니까.125.131.9.225 (토론) 2009년 8월 26일 (수) 19:39 (KST)[답변]
전두환 측의 의견은 가해자측이니 무조건 배재되어야 한다는 것은 중립적이지 못한 시각입니다. 가해자측 의견이라 무시해야 된다는것은 중립적이지 못하고 동의하기 어렵읍니다. --100범 (토론) 2009년 11월 25일 (수) 00:02 (KST)[답변]
말도 안되는 소리 마십시오. X소리도 좀 작작해야 봐드리든가 하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어디가서 광주사태때 전두환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 해보십시오. 그런 망언 아무데서나 했다가 얻어 터지고 싶지나 않으시거든 가만히나 있으시지......ㅉㅉ BongGon (토론) 2009년 12월 31일 (목) 16:25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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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사실과는 다릅니다. 영화(화려한 휴가)나 책(교과서를 비롯한 많은 서적)에서는 군인들이 총을 쏘았고 때문에 무기고를 탈취했다고 하지만,80년 5.18당시 광주와 나주에 계셨던 김동문님에 의하면 시민군(광주폭도)들이 무기고를 탈취한것은 5월 19일 오후 3시경입니다. 첫번째 교전이 일어났던 5월 22일보다 무려 3일전에 무기고 탈취가 나주에서 일어난 것이죠!

북에서 내려온 폭도들은 뒷골목에서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죽이고 이 시체를 수레에 싣고, 광주도청앞 광장으로 옵니다. 이들은 공수부대가 죽였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광주시민들은 흥분시켜서 폭동을 유도하기위한 간첩들의 수작이었죠.

광주는 대한민국역사상 가장 왜곡된 사건의 하나이고 대한민국최대의 사기사건 입니다.

이미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광주라는 책 (화려한 휴가라는 조작왜곡 영화의 실체가 밝혀짐)을 출판한 수많은 탈북자들의 증언들과 수많은 광주 폭동의 증거(http://www.study21.org/518/).... 들........

이 모든 것들이 광주폭동은 좌익폭도들이 선전선동 거짓말로 사람들을 흥분케 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무고한 많은 시민들을 좌익폭도(=남파북한군+남한좌익군=시민군)들이 죽인 사건임이 밝혀졌는데도 아직도 민주화운동 이라느니 헛소리 하면서 80년대적인 구시대적인 사고의 틀을 못 벗어나는 사람들은 도데체 뭔가요?

더구나 전두환이라는 보안사령관 즉 군 수사기관의 장이 무슨 방법으로 계엄군을 동원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점점 분명해 지는 사실은 전두환은 518과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며 교전도 80년대 국회 청문회에서 밝혀진대로(증인들의 증언대로..) 최초의 발포인 시민군(=좌익폭도)들의 발포후 자위권발동 이었음이 더욱 분명해 진다.

 http://www.study21.org/518/


현지의 증인들은 (좌익들의 역사조작과 다르게) 5월 19일 이미 경찰서 무기고들을 털었다는 것이며(계획적 조직적), 이로 보건데 공수부대의 첫 발포였던 5월 22일보다 3일이나 앞서서 좌익폭도들은 이미 무장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전두환과 광주는 사실 아무 상관관계가 없고 유언비어로 마치 전두환과 광주가 관계가 있었다는 것처럼 30여년 동안 속아 왔지만 이제서야 좌익들에 속아 거짓을 믿어 왔었다는 것을 깨닫으며, 그 동안 전두환을 나쁘게만 생각해 왔으며 분명 나도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전두환을 나쁘게도 말해 왔었을 터인데, 전두환에게 미안해 지는 순간이다. 대학때 운동권에 쇄놰되었던 내가 미안해 진다. (전두환씨께 사과하고 싶다.)

전두환은 분명 억울하게 5.18과 연관지어 졌었다.


요즘도 유튜브에 가보면 북한이 아주 훌륭하고 좋은 나라라는 착각이 든다.

또 김일성 김정일은 아주 훌륭하고 사랑이 많은 지도자인 것처럼 느껴진다.

거짓을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믿게 만드는 북한의 선전선동은 기가 막힌다.

좌익의 거짓말 선전선동에 지난 30년간 마치 좌익이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지 않은 것처럼 선전되어 온것을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거짓 선전선동의 귀재 들인가!? !!

북한과 남한내 좌익분자들이 일으킨 광주 폭동을

마치 전두환과 미국이 일으켰다고 당시에 소문내고 다니던 거짓 선전선동들!

화려한 휴가라는 좌익들이 5.18의 역사적 사실들을 호도한 조작영화를 보라

조작하여 사실로 믿게 하는데는 영화와 만화가 최고라고 말하는 좌익들!!

이 또 얼마나 좌익들을 조작선동의 귀재들인지 모른다.

지난 10여년 이래로 청와대와 국정원등 정부 기관들으르 장악한 좌익들의 공작들과

PD수첩조작 광우병사태등 방송을 장악한 좌익 거짓말 세력들을 봐도,

용산폭도들의 사태를 봐도 얼마나 좌익들이 거짓선동의 마왕들인지 알 수 있다.

이렇듯 북한과 좌익은 선전선동의 귀재들이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니까.. 거짓증거 하다가 지옥가는 것이 그들의 전매 특허 취미

마귀의 아들들 북한과 좌익들의 전문다.


광주 518의 최초 발포자는 시민군(북한군+남한 좌익)이었음이 너무나 분명해 졌고,

광주 폭동을 진압하여 적화를 막은 공수부대가 분명히 자랑스럽고,

그 당시 투입되었던 공수부대는 분명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된다.

그대들 광주 투입 공수부대가 있음으로해서 지금의 한국이 있는 것이다.

그 당시 공수부대에 진압되어 남한적화를 못이룬 좌익들이

공수부대를 살인마로 몰아가고 최초 발포자라고 허위소문을 내는 것은

당연한 심리적 메카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철책선에서 군복무를 한 사람들은 누구나 느끼며 인정 할 것이다.

남쪽 부대에서 일어난 일들이 바로 다음날 북한의 철책선 대남방송을 통해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이는 남한 정부 요직과 정보기관에 북한의 간첩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며 남한 정부 요직에 북한간첩들이 포진해 있다는 의미 일 수 밖에 없다


북한 간첩으로 의심되는 당시 정부 요직에 있었던 이종찬과 김원웅(공화당 국회의원)이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것을 눈치채고 김대중과 북한에 정보를 올려 보낸것 같으며, 김대중의 부하 윤개원(가명 윤상원)이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를 만들어 내었으며, 동시에 북한에서도 전두환 물러가라는 방송이 나온 것은 북한과 남한 좌익이 이미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고 그 책임을 전두환에게 뒤집어 씌울 작정을 한 것 이었던 것 같다.


80년도에 이미 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그 들일 테니까....

80년 5월 당시 미 항공모함이 부산에 온 것은 개혁개방을 시작한 등소평이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해 북한이 알려준 곧 남침할 것이란 정보를 일본을 통해 미국에 간접적으로 전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윤개원(가명 윤상원)이 한 작태는 남침을 방지하기 위해 왓던 미 항모를 마치 미국이 광주시민들을 도우러 왔다고 또 거짓부렁...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광주시민들을 포함한 전 국민이 친미적이었고 미국은 우리의 은인었거든..

마음속에 있는 반미적인 말을 했다간 간첩임이 들통날테니까

이렇게 교묘하게 폭동을 미화했었던 것이었다.

마치 미국정부도 광주폭동을 지원한다는 늬앙스를 풍기도록...

그래야 광주시민들이 계속 좌익과 간첩들에게 속아줄 것이며 계속 폭동에 참여 할테니까!

국군의 도청진입작전정보를 정부 고위층(간첩)으로 부터 통보받은 것으로 여겨지는 간첩세력(시민군)지휘부는 폭동이 폭동자체로는 진압 실패 된것으로 인식하고 광주시민들을 더이상 폭동에 가담.유지시킬 수 없었기때문에.... 남한측 총책임자 얼굴마담 윤개원(윤상원)을 칼로 찔러 죽이고 그의 몸에 불을 붙이고 도청을 탈출 북으로 돌아갔다고 여겨진다. 나중에 발견된 타다남은 윤상원의 시체엔 자상과 화상이 발견 되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김일성이 말한 바 남한 인민들의 도움 요청이 있을 경우 남한에 도와주러 내려간다.라는 말은 남한에서 좌익들을 통한 폭동및 방속국장악을 통한 남한폭동세력들의 방송을 통한 도움요청을 이미 북한과 남한좌익들이 시나리오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라는 추론은 초등학생도 생각할 수 있다.


79년 10.26이후 소위 남조선 해방의 호기를 잡은 북한이 79년 11월부터 80년 5월까지 줄기차게 내려보낸 그래서 광주 폭동을 일으킨 북한의 특수부대의 숫자가 대체로 600여명-700여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최소한의 숫자이며 그 숫자가 더 이상 될지 아직 알수 없다. 정확한 남파 특수부대원들의 숫자는 김정일이 이실직고를 하거나 남측에 의한 통일이 되어야 밝혀질 것 같다. 그들이 80년 사북 탄광 폭동과 광주 폭동을 주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좌익들이 광주사태 당시 방송국을 불태운 것은 광주의 진실(폭도들의 만행등등...)이 광주 방송국을 통해 전파를 타게 하지 않기 위한 술수였다고 한다.


무고히 희생당한 광주시민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김일성이 일으킨 5.18광주 무장공비 폭동의 진실은 밝혀져야한다. --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Ioseph09(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그러나 문장이 너무 장황하므로 정리하여 다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신뢰성이 의심됩니다. 여러 사람이 확인할수 있는 언론 등의 공개적이고 중립적인 출처를 제시하셨으면 합니다. 증거 및 출처가 제대로 제시되지않으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UNCIA Discussion ·Contributions 2010년 1월 9일 (토) 08:19 (KST)[답변]
유튜브에 나온 북한 모습을 보면 김일성 김정일이 훌륭한 지도자가 아니라 쓰레기 같은 독재자라는 생각만 듭니다만. 결론은 증거도 없이 '광주사태'와 독재자 김일성의 대남공작을 연결시키려는 것 아닌가요? adidas (토론) 2010년 1월 9일 (토) 12:42 (KST)[답변]
꼭 저런 헛소리를 들고 나오는 분들이 드는 사이트는 꼭 study21뭐 어쩌구하고 역사학도 블로그 정도로 끝이더군요. 민주화 운동 여부는 이미 주요언론에서 (조선, 중앙, 동아 포함) 모두 깨끗히 인정했고, 북한군 개입론(퐌타지 소설이지만)은 주요언론에서 거론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합니다.%Les Templiers% et %Templiers Noirs Discussion Histoire 2010년 1월 9일 (토) 13:54 (KST)[답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어떤 정권에서 인정을 하였던 간에 현재 민주화 운동이라고 규정된 것입니다.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다고 하기 전에 먼저 공식적인 명칭을 생각하세요. 차기 정권 혹은 앞으로 먼 미래에 다시 광주 사태라고 국가가 인정을 한다면 그때 바꿔도 되는겁니다. 영화나 책만 대충 훑어보고는 어떤 면에서는 사실과는 다르다 어쩌다 하기 전에 국립 5·18 민주 묘지에 한번이라도 방문을 하시고 토론을 하세요. 위키백과 상의 내용과 국립 5·18 민주 묘지에 있는 사료들의 내용이 상이한 것은 없습니다. 정말 나중에 역사관이 바뀌거나 해서 사료가 바뀌면 그 사료에 따라 위키백과의 내용이 바뀌면 되는겁니다. 논리 정연한 것처럼 의견 제시하지 마세요.--라떼처럼 토론 2013년 1월 10일 (목) 17:45 (KST)[답변]

의견 삭제는 신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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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복구 했습니다.%Les Templiers% et %Templiers Noirs Discussion Histoire 2009년 4월 28일 (화) 10:42 (KST)[답변]

5.18

슬퍼용—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미녀(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저두용...ㅠ.ㅠ민주화운동이에요 5.18은인정해주세요—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Dain225(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맞으니 걱정안하셔도 될듯 합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교과서도 이를 부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H군 (토론) 2009년 5월 3일 (일) 16:11 (KST)[답변]
그것은 개인의 의견입니다. 백과사전 편집에는 개인의 의견반영은 부적절해 보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적 입장은 민주화운동입니다. 그러나 이견이 제기되니 언제 뒤집어질 수도 있는 문제인것 같읍니다. --100범 (토론) 2009년 11월 24일 (화) 23:57 (KST)[답변]

5.18. 민주화 운동이 맞습니다. 5.18을 인정 안한다고요? 이건 무슨 소립니까? 5.18이 그럼 민주화 운동이지 아닙니까? 북한군이 투입됐다고요? 그건또 무슨 소리?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왜곡됀것이 지금가지도 돼는군요. 저는 군인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둥 이런 말은 잘 안믿습니다만, 이때 억울한 사람들이 죽은것도 사실이고 노인들도 " 6.25때도 이러지 않았다. " 라고 증언할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5.18이 북한 짓이라는 탈북자의 말을 믿겠습니까 아니면 그때 있던 노인들의 말을 믿겠습니까? 최민창 (토론) 2010년 1월 6일 (수) 17:18 (KST)[답변]

너무 100범에게 관심주지 마세요. 대한민국보다 북한 말이 더 신뢰한다고 말하는 자잖아요.--이결 (토론) 2011년 5월 6일 (금) 16:57 (KST)[답변]

편집분쟁을 해결해봅시다.

무조건 돌리고 되돌리고 이러지 말고, 토론으로 해결해봅시다. 밑의 제목들은 제가 쓴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UNCIA Discussion ·Contributions 2009년 5월 7일 (목) 01:35 (KST)[답변]

1. 출처 문제

어디까지 출처를 잡아야 하는 대상으로, 어디까지 출처를 잡지 않아도 되는 대상으로 보십니까?

2. 세부적 사항으로

북한군 개입설의 출처는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한미군 공군 군산기지의 위치의 출처는 필요합니까?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의견 위치의 출처는 따로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리정보와 같은 단순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합니다. 은종현 (토론) 2009년 5월 7일 (목) 03:23 (KST)[답변]
  • 의견 주한미군에 대한 정보가 아닌 주한미군과 관련된 주장을 어딘가에서 제시했다는 출처가 필요합니다. jtm71 (토론) 2009년 5월 7일 (목) 03:39 (KST)[답변]
  • 의견 북한군 개입설도 엄연히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냥 냅두고, 여기에 대한 반박으로서 반론 부분을 그대로 남겨두는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상식적으로 주한미군 기지 근처의 지역에 북한군이 개입해서 폭동을 조장했는데 이게 알려지지 않을리가 있나요? 현재 자꾸 편집을 돌리는 사람들의 주장을 보면,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서는 좌우지간 출처가 붙었으니 됐고, 여기에 대한 반론은 어떻게든 정확한 출처가 붙지 않으면 용납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북한군 개입설을 어떻게든 정당화하려는 고집이죠.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 개입설과 반론 모두를 인정하는게 바람직합니다. Youn8691 (토론) 2009년 5월 7일 (목) 22:14 (KST)[답변]
  • 의견 주한미군 공군 군산기지의 위치의 출처가 어디입니까. 주한미군 공군 군산기지의 위치의 주소나 출처를 올려 주십시오. 사용자:박희구사용자토론:박희구 2009년 12월 31일 (목) 04:14 (KST)[답변]
  • 의견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도 주한미군 기지가 있습니다. 만약 광주에서 북한군이 있다면 5~10분 내로 개입할 수 있는 거리죠. 그리고 광주광역시에는 향토사단 31사단 뿐만 아니라 상무대도 있었습니다. 보병학교,기갑학교,포병학교 등 병력들만 해도 2만명에 달하는데 이 병력도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나섰습니다. 부산,대구,대전 등 다른 지방 대도시에 비해 광주 지역 병력이 절대 적은 편이 아닙니다.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Amoeba(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 의견 박희구씨, 바로 이곳 위키백과의 주한 미군 항목에도 군산기지 나와 있거든요? Youn8691 (토론) 2010년 6월 7일 (월) 02:54 (KST)[답변]

조선인민군 개입 논란에 대해

백과사전 편집에 있어서 감정적 편집보다는 5.18 광주사건 당시 조선인민군의 개입, 침투여부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할것 같읍니다. --100범 (토론) 2009년 11월 24일 (화) 23:58 (KST)[답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다만 시스템클럽은 극우 인사 지만원이 주도하고 있고, 역사학도의 시사토론장은 '일개 카페'에 불과하기 때문에 위키백과에 사용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스템클럽의 경우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이 옳습니다. adidas (토론) 2009년 11월 25일 (수) 00:25 (KST)[답변]

극우는 누가 극우입니까 지만원 선생님이 극우면 당신은 극좌파입니까 서명 : 사용자:박희구, 사용자토론:박희구

지금 언급 되고 있는 수준도 과분한 겁니다.%Les Templiers% et %Templiers Noirs Discussion Histoire 2009년 11월 25일 (수) 09:06 (KST)[답변]
광주사태에 북한 인민군이 침투했다는 설도 하나의 주장이고 견해입니다. '극우 인사 지만원' 이라는 발언은 또 뭡니까? 이런식으로 토론할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무작정 배격만 하면 어쩌자는 겁니까? 5.18 광주는 절대 재연구나 재조명하면 안되고 어떠한 반론을 들이대서도 안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입니까. -- 붉은물 (토론)
조선인민군의 침투가능성을 포함, 모든 가능성은 열어봐야겠지요. 전두환측의 입장이라고 배격되는 것은 곤란하다 생각됩니다. 받아들일수는 없더라도 참고정도는 해야되지 않겠읍니까? --100범 (토론) 2009년 11월 26일 (목) 23:52 (KST)[답변]
단순 증언 외에 명확한 근거가 있다면야 가능성을 열거나 참고를 하는 차원을 넘어 건설적인 토론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북한군 투입설 등은 확실한 증거는 고사하고 증언조차도 반박을 막아낼 여력이 없습니다. Youn8691 (토론) 2009년 12월 8일 (화) 00:20 (KST)[답변]

광주 사태에 침투한 북한군을 여기서는 왜 북한군이라 부르지 않고 조선인민군이라 부릅니까 서명 : 사용자:박희구, 사용자토론:박희구

위키백과는 한국어 위키백과입니다. 즉 한국어를 아는 모든 사람은 편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북조선 사람이 이 문서를 볼 때 북한이란 명칭이 비공식적이기 때문에 중립적인 조선인민군이라고 합니다. --User:Bart0278 (talk · cont.) 2009년 12월 31일 (목) 16:06 (KST)[답변]

화려한 휴가에서 재현되지 못했던 부분

1.신군부의 5.17군사정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여 광주 시민들이 시위를 벌인 동기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2.공수부대원들이 시위 진압 도중 대검을 사용하는 장면을 누락했다. 심지어 19일~20일 진압 도중에 19세 여성이 대검에 가슴을 찔린 사건도 있었다.

3.공수부대원들이 4인 1조로 올라가 주변 빌딩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을 가하는 장면이 빠졌다.

4.신군부는 시위대의 외곽진출을 막기위해 외곽도로를 봉쇄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 화려한휴가에서는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사건>>을 제외하면 지나가는 사람이나 차량에게 발포한 사건들 상당수가 누락되었다.

5.광주 시민이 단순히 한두 사람에게 지휘를 받은 식으로 묘사한 것은 잘못되었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광주 시민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토론을 통해 결정하였다. 자율적으로 방범 활동도 벌여 시내 중심의 금융가,상점가에서 도난 사건이 단 한건도 없었다.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Amoeba(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증거가 없는..

지만원씨 사이트나 다른 보수측면에 사람들이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것을 '주장'으로 담을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게 '사실' 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너무 많죠. 특히 그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지만원씨 사이트나 다른곳을 봐도 누가 그랫다 "카더라" 이지 실제로 인정한 '사실'이 없습니다. 지만원씨 사이트를 보면 탈북자의 증언이 내 사촌 누구누구가 남한에 갔다더라 이수준이지 직접 남파한 간첩의 증언이나 사실 및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사진 한장 없습니다. 사실 수많은 5.18의 사진중에 이 사람이 북한 간첩이다. 라고 딱 지적해서 그 사람이 대한민국 국적의 사람이 아니라면 간첩의 5.18 개입이 있었다는걸 증거하지는 못하더라도 개연성을 나타낼수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북한의 개입설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에 대한 '주장'을 하고 있는것을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누군가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라는 식으로 편집을 하는것이 낫다고 봅니다.--61.255.1.169 (토론) 2010년 1월 7일 (목) 17:47 (KST)[답변]

증거가 없기는요. 증거가 없다는 것은 그쪽 IP주소님의 생각이고 광주폭동 당시 조선인민군이 침투한 증거가 단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지만원이나 이주천, 역사학도 같은 사람들의 카더라 설로 넘겨짚지 마세요. 소수의 생각이라고 해서 배척하는게 어떻게 민주주의적인 토론자세입니까? IP주소님 생각대로 함부로 속단짓지 마세요. -- 붉은물 (토론) 2010년 3월 7일 (일) 16:32 (KST)[답변]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주장까지 존중하는것이 민주주의는 아니라고 봅니다.--^_^ (토론) 2010년 5월 17일 (월) 15:24 (KST)[답변]
주장도 주장나름이지, 근거도 없이 막 지껄이는것은 궤변일 뿐이죠.진실과 환상 (聞きたい) (Contribuciones) 2010년 5월 19일 (수) 00:12 (KST)[답변]
증거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는게 결국 증거가 없는거 아닌가요? 어떻게 된게 특정 정치성향을 띤 사람치고 제대로 말하는 사람이 없는지 의문이네요. Youn8691 (토론) 2010년 6월 7일 (월) 02:56 (KST)[답변]
카더라 설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본문이 충분히 설명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광주로 침입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강원도나 경기도처럼 초계부대에 걸리지 않고 간다는 것도 힘들고, 남한에서도, 서방에서도, 광주 시민조차도 몰랐을 정도로 5.18이 순식간에 전개되었는데 북한이 그것을 눈치채고 파병한다는 것도 힘듭니다. 더군다나 미군부대가 있고, 계엄까지 내려진 곳에서 시체 하나 남기지 않고 무사복귀 했다는 것도 말이 안되죠. 이런 상황에서 북한 개입을 주장함으로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북한 개입을 증언하는 것만을 근거로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다만 간첩이 암암리에 활동했을 가능성까지 부정되어선 안되겠지만, 간첩활동의 결과물이 5.18이다 등의 주장을 하기엔 당시의 분위기는 반공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조갑제도 그런 이유에서 반공민주화 운동이라고 말한 것이구요. 법정에서도 증거물 없이 증언만으로 유죄 판결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Gurach(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신문 기사 내용

신문 기사 내용을 이념적이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로 보입니다. -- 100범 (토론) 2010년 6월 2일 (수) 16:16 (KST)[답변]

미디어마다 신뢰도와 저명성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위에서 지적한 미디어들의 경우 신뢰성과 저명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미디어에서 주장하는 것을 문서에 실을 때에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며 되도록 보다 저명성과 신뢰성이 담보된 다른 미디어의 추가적인 보도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그런 후속 조처 없이 일방적인 주장을 싣는 것은 당연히 중립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사실 관계도 의심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억지라고 비난하기 전에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사용하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곧바로 사용자 관리 신청 문서로 가져가는 것은 분란을 조장한다는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으므로 그 또한 자제하여 주십시오. Jjw (토론) 2010년 6월 4일 (금) 22:49 (KST)[답변]

흠좀무

싱가포르에 사는 재외 교포입니다. 이 문서를 둘러보다가 내나라에서 가져온 내용이 있네요. 내나라는 북한 웹사이트로서, 친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마 극단의 친북인 사람들이 봐도 '이건 너무했다' 라고 할정도입니다. 우파인 분에게는 유머죠.) 싱가포르는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내나라 사이트를 볼수 있습니다. 제가 이 내용을 삭제했습니다만, 괜찮나요? -218.186.9.248 (토론) 2010년 7월 16일 (금) 19:40 (KST)[답변]

친북 여부를 떠나서 어차피 기존 문서에 있는 내용과 겹치기 때문에 삭제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5.18 과 관련해 북한쪽에서 주장하는 것은 설령 그게 맞는 내용이더라도 배제를 하는게 합당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것도 북한이 대한민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처럼 보여서 썩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Youn8691 (토론) 2010년 7월 26일 (월) 01:21 (KST)[답변]
'5.18 과 관련해 북한쪽에서 주장하는 것은 설령 그게 맞는 내용이더라도 배제를 하는게 합당하다고 봅니다.' 이건 독자의견입니다. 여기는 한국위키가 아니라 위키백과 한글어판입니다. 북한에서 5.18 항쟁 당시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시점에서 북한의 간섭이 사실일 가능성도 있는 문제입니다. 북측의 주장도 들어볼 필요는 있읍니다. -- 100범 (토론) 2010년 8월 2일 (월) 21:34 (KST)[답변]
한글어판이 아닌 한국어판임을 알려드립니다. 한글한국어는 다릅니다.:) --Şilver ßullet (토론) 2010년 8월 8일 (일) 14:23 (KST)[답변]

'인권 운동가의 평가'를 보면 "2000년 5월 17일 북조선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윤성식은 광주인민봉기 20돐에 즈음하여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 회견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는 시민단체나 인권운동기구가 아닌, 북한의 관제 기구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가로 옮겨야 할 듯 싶습니다. 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주장'에서 민주노총이 시위를 벌였다는 내용은 북한과 관련 없는 뉴스 보도이므로 옮기거나 삭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Amoeba (토론) 2010년 8월 19일 (목) 16:29 (KST)[답변]

폭동설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부인주의사례로 간주하겠습니다. 이의있으신 분은 답글을 남기길 바랍니다 --59.10.23.198 (토론) 2010년 7월 18일 (일) 10:50 (KST)[답변]

'극소수설'로 다뤄줄 수는 있겠네요. 뭐 간첩이 한두명 정도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광주 민주화운동에 미친 영향력은 0.00001%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adidas (토론) 2010년 7월 27일 (화) 13:24 (KST)[답변]

'극소수설'이라는 것도 괜찮아 보이지만 그런 문서가 없는게 아쉽고 이미 과학적으로 그리고 당시 관련자들이 그 사실에 근거를 한 증언을 해 검증이 다 끝난 사건에 소수의 증언만으로 가지고 논의되는 사실이 아쉬어서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것이니까요--59.10.23.42 (토론) 2010년 7월 31일 (토) 23:03 (KST)[답변]

북조선의 미확인 주장

100범님이 북조선의 주장을 싣으려고 하시는데 북조선의 주장은 미확인된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방부, 검찰의 객관적인 조사 내용과 충돌되고요. 그러한 설이 있다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가"란에서 언급 할 수는 있겠지만 객관성이 요구되는 전문,전개과정,배경 등에 싣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봅니다. 또 쓸데 없는 내용이 많아지면 독자들이 읽기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ㅎㅎㅎ (토론) 2010년 8월 2일 (월) 13:37 (KST) 2010년 8월 2일 (월) 13:36 (KST)[답변]

광주사태 당시 북한 인민군이나 북한 공산당측의 개입이 전혀 없었다, 그들의 발언은 옳지 않다 는 사용자:Amoeba님의 생각부터가 독자적인 판단이고 독자연구입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 북측의 의견도 들을 필요는 있읍니다. 그리고 광주사태 당시 북한의 개입이 신뢰성이 없거든 인민군이나 공산당의 개입 여부를 청문회를 해보던가요. 님이 확인할수 없다 하여 출처가 있는 것을 무조건 사용자:Amoeba님 독단적으로 내용을 배제, 삭제하려는 것은 올바른 편집태도가 아닙니다. -- 100범 (토론) 2010년 8월 2일 (월) 21:36 (KST)[답변]
출처 자체가 신빙성이 떨어지는데다, 온통 다 단순 증언말고는 이렇다 할만한 물증이 없어서 그런겁니다. 더군다나 북한에서 하는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못 믿는 경우가 태반인데, 북한측의 의견을 듣는다는거 자체가 저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특정 정치 성향을 띠고 있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툭하면 좌파니 빨갱이니 하면서도, 정작 그들에게 유리하다면 북한의 말같지도 않은 헛소리를 맞는 말이라고 하니 참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네요. Youn8691 (토론) 2010년 8월 4일 (수) 03:20 (KST)[답변]
Youn8691 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신뢰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군요.--1 (토론) 2010년 8월 4일 (수) 21:35 (KST)[답변]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주장과 미국이 개입했다는 북한의 주장은 다릅니다. 그 차이를 모르시는지요? --Amoeba (토론) 2010년 8월 9일 (월) 16:57 (KST)[답변]
윗 분들 말씀에 동감합니다. --Cerdo33 (토론) 2010년 9월 1일 (수) 10:30 (KST)[답변]

저는 위의 몇 분과 달리, 북조선의 주장을 5.18 문서에 싣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북조선의 주장도 일부분 싣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미국 개입설, 반미 봉기설과 같은 북조선의 주장은 소수설이며, 전혀 입증되지 못 한 것입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서 편집해야 합니다. 전개과정란, 전문 같이 객관성이 요구되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죠.

전개 과정란의 경우, 광주에서 일어났다고 충분히 입증된 사실 만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전개과정을 설명하는 도중에 평가를 사이에 넣는 것은 올바른 편집 태도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6.25 전쟁 전개과정, 이승만의 생애에 대해 서술하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북조선이나 좌파 단체의 평가가 들어가면 어떨까요? 독자 입장에서 읽기 불편할 것이고 황당하지 않겠습니까. 두 가지 문서와 100범님의 5.18 문서 편집 방향을 한 번 비교해보시면 아실 겁니다.

또한 전문(맨 처음 글)도 글 전체를 요약한 것이기 때문에 객관성이 요구됩니다. 북조선 개입설, 미국 개입설 같이 입증되지 않은 소수설은 지금처럼 전문 마지막에 간략하게 언급하는 방식이 옳다고 봅니다.

북조선의 미국 개입설 중에 광주의 상황이나 미국 인사들의 발언을 인용하는데서 신뢰성을 의심할만한 경우도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출처불명의) 브레진스키가 5.18 진압을 정당화했다는 말을 재인용한 북조선 주장보다 , 브레진스키의 발언을 현장에서 직접 보도한 미국 언론을 인용해야 신뢰성이 더 높아집니다

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가"라는 항목이 있어 소수설로서 북조선의 주장이나 평가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기 때문에 100범님의 의도도 이미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Amoeba 2010년 8월 8일 (일) 14:23 (KST)

사용자:박희구가 제시한 토론 삭제 토론

5.18 광주폭동에 북한군 1개대대 왔다! 토론 부분입니다. 별로 유의미한 토론이 없으며 출처가 대부분 블로그, 게시판입니다. 이곳은 문서의 기재 여부를 토론하는 곳이지만, 저 토론은 그런 목적이 아니라 단순 음모론을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습니다. 토론의 목적도 모호하며, 대부분 소모성 인신공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식의 토론은 보존해봐야 위키백과의 토론 질만 흐릴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숨김처리나, 삭제 토론을 실시합니다.--1 (토론) 2010년 8월 5일 (목) 18:56 (KST)[답변]

동의합니다. 블로그,게시판글이 출처 근거가 될수있다 없다를 떠나서 그 주장하는 글들 출처가 '역사학도'라는 사람인데... 그사람의 주장하는것들 거의 대부분이 엉터리 주장들 투성입니다. 사료에 대해서도 앞뒤정황을 전혀 고려하지않고 엉뚱하게 해석하지않나... 무튼 '역사학도'라는 이 사람이 쓴글 거의 신뢰를 못하는 수준입니다.--sienic (토론) 2010년 8월 8일 (일) 14:20 (KST)[답변]
개인 블로그를 인용하는 것은 독자 연구 금지 원칙을 위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moeba (토론) 2010년 8월 8일 (일) 14:31 (KST)[답변]
숨기든지, 딴데 보관합시다. 뭐 영양가가 있어야.....--Saehayae (토론) 2010년 10월 16일 (토) 03:12 (KST)[답변]
필요시 역사를 참고하세요--1 (토론) 2010년 10월 16일 (토) 03:18 (KST)[답변]

지금 열심히 되돌리기가 진행 중인데

계속되는 돌리기 때문에 역사와 최근바뀜이 말이 아닙니다. 토론은 편집 요약이 아니라 토론창에서 해 주시면 안될까요? Ø샐러맨더 (토론 / 기여) 2010년 9월 11일 (토) 18:09 (KST)[답변]

중립?

중립성에 약간 금이 간 것 같습니다. 우파의 주장을 보면 "-주장했다", "-반박했다"로 끝나는데, 그에 대한 반박은 "-있을 수 없다" 같이 단정짓고 있습니다. 편집자 여러분의 정치적 시각은 존중하지만, 다른 시각을 "증거가 없다"고 깎아 내리는 것 자체가 중립을 지키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중립성을 잘 지켜주시길 바랍니다.--NuvieK (토론) 2011년 4월 26일 (화) 10:15 (KST)[답변]

그런데 극우파 쪽에서도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실질적인 주장을 내놓지 못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주장들이죠--Amoeba (토론) 2011년 4월 26일 (화) 13:40 (KST)[답변]
위안부도 강제 동원 아니라고 믿는 자들의 주장 너무 자세히 소개할 필요 없습니다. --이결 (토론) 2011년 5월 6일 (금) 17:05 (KST)[답변]

분쟁이 있으신분 토론을 하시죠.

뭐 어디 언급도 없이 분쟁만 생기고 있네요. 판결문 보강하러 들어왔더니만 허허 --Demi (토론) 2012년 12월 12일 (수) 02:55 (KST)[답변]

사소한 편집이지만..

위키백과:삭제 토론/틀:대한민국의 사건 및 사고에서 틀을 삭제하는 것으로 총의가 형성되었습니다. Sotiale님께서 봇으로 틀을 삭제하셨다고 하셨지만 아직 본 문서에 틀이 남아 있습니다. 삭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Hwangjy9 (토론) 2012년 12월 20일 (목) 14:03 (KST)[답변]

완료 문서가 보호되어 있어서 봇이 편집을 못 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요청하신 바는 처리하였습니다. --Sotiale (토론) 2012년 12월 21일 (금) 00:21 (KST)[답변]
감사합니다 -- Hwangjy9 (토론) 2012년 12월 21일 (금) 22:42 (KST)[답변]

이 글은 전혀 중립적이지 못합니다.

5.18 사태와 관련해 일부에서는 민주화운동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두 쪽 모두 근거와 사실에 부합한 주장인데, 작성자분은 이를 민주화운동이라는 점만 부단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광주사태가 하나의 폭동이었다는 근거도 민주화운동이었다는 증거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습니다. 이는 또한, 극우파의 주장이라고만 보기에는 힘들고, 일반적인 역사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폭동이었다는 기사와 주장에 신빙성이 낮다는 것도 출처가 부족하며 이는 글쓴분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합니다. 다른 일반인이 보기에 다소 진실을 못 보고 한 쪽면만을 볼 우려가 있으니, 광주사태가 폭동이었다는 주장도 형평성 있게 중립을 지켜야합니다. 그렇지 않을경우, 이 글은 한쪽에 치우친 작가만의 소설책에 불과 하지 않을겁니다. 역사가는 만화책방에 있는 판타지 소설을 가지고 역사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중립성을 지켜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24.5.141.38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Hwangjy9 님이 추가하였습니다.

질문 몇 가지 할게요.

  1. 광주 민주화 운동이 폭동이라는 증거가 민주화 운동이라는 증거보다 더 많다는 말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2. 일반적인 역사에 근거했다는 말이 뭔가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3. 폭동이었다는 기사와 주장에 신빙성이 낮다는 것이 출처가 부족하며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그 부분을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신가요?
  4. 24.5.141.38님이 생각하시는 진실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5. 지금 위키백과에 써져 있는 것이 소설밖에 안 된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리고 틀림다름은 분명히 같은 낱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 Hwangjy9 (토론) 2012년 12월 26일 (수) 00:16 (KST)[답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도 '광주민주화운동 [光州民主化運動]'이라고 표제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02g1422b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말씀인지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국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널리 그 공신력이 인정되며 이에 따라 민주화운동으로 보는 견해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보입니다. 타이호 (토론) 2012년 12월 27일 (목) 12:47 (KST)[답변]

이전에 이뤄진 적이 있는 토론입니다. 두 번 하면 서버 부담만 키울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왜 이 일이 민주화운동이냐, 폭동이냐를 두고 토론을 위키백과에서 해야 하는지모르겠습니다.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Riot'이라고 하는 것같던데 말이죠. --미리내바라기 (토의) 2012년 12월 30일 (일) 19:59 (KST)[답변]

솔직히 5.18이 폭도니 하는건...

에초에 5.18민주화 운동이라고 시작한건 노태우 정부 이고 그이후로 어느 대통령이든 이에 이의제기 한적 없습니다 먼저 5.18이 폭동이라고 바꾸고 싶으면 정부 입장부터 바꾸시지 여기서 바꿀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가내요 솔직히 북괴 개입설이든 폭동이든 이거부터 읽으시고 토론이나 합시다 1.대법원 판결 2.검찰 5.18의혹 조사 3.국방부 과거 진상규명 위원회 보고서 -- 이 의견을 작성한 사용자는 175.215.231.227 (토론)이나, 서명을 남기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추가하였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 민간인 암매장 사건에 대해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원에 의해서 비무장 민간인이 암매장된 사건이 있습니다. 공수부대원은 민간인을 사살하고 대대에 보고했으나 상부에서 암매장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부인되오다가 2001년 양심에 가책을 느낀 공수부대원의 양심고백으로 밝혀진 사건입니다. 피해자도 밝혀진 역사적 사건이니 광주민주화운동 민간인 암매장 사건에 대해서 본문에 추가 해주시기 바랍니다. (토론) 14.33.78.179 (토론) 2013년 1월 12일 (토) 11:08 (KST)[답변]

백과사전에 실릴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라면, 학술 논문이나 공공기관의 발표 또는 공신력있는 언론 기사 등의 출처와 함께 직접 문서를 편집하시면 됩니다. -- 리듬 (토론) 2013년 1월 12일 (토) 11:12 (KST)[답변]
피해자 부분에 대해서는 내용이 빠진 것 같아, 추가하려고 하는데 문서가 잠겨있어서 할 수가 없네요. 피해자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80년 5·18 당시 진압군에 사살돼 암매장된 사람은 보성 출신 박병현씨라고 합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056202 14.33.78.179 (토론) 2013년 1월 12일 (토) 11:21 (KST)[답변]